우리를 일으키는 말 “얼어나라!” 아침마다 엄마가 아무리 깨워도 꿈쩍 않던 우리 “얘들아, 눈 왔어.” 그 소리에 큰형 벌떡 일어납니다. 나도 발딱 일어납니다. 막내 찬이도 빨딱 일어납니다. 우리를 일으킵니다. 농촌에서 살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놀지 않은 시기가 없었다. 봄이면 참꽃 산을 오르내리거나 살구나무 아래서 꽃향기에 취하고, 여름이면 냇물에서 풍덩대며 서리한 자두를 먹고, 가을이면 고추잠자리 나는 하늘에서 알알이 영근 감을 따고, 겨울이면 온통 동무들과 놀이 세상이었다. 사계절 내내 동무들과 뛰어놀았다. 특히 겨울이면 연 날리기, 얼음배 만들어 타기, 썰매타기, 자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깡통 돌리기, 논에서 축구하기 등 놀이가 풍성했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바둑이가 가장 먼저 좋아했다. 아침마다 엄마가 깨워도 꿈쩍 않던 아이들도 벌떡 발딱 빨딱 일어난다. 환호성을 지르며 마당으로 나가 눈을 맞고 눈사람을 만들며 눈싸움을 한다. 그때는 눈이 또 왜 그리 푸짐하게 내리던지. “눈 내린 지 열흘이 넘었는데 / 뒷산 눈은 그대로 / 눈 내린 지 보름이 지났는데 / 꿈쩍 않고 그대로”(「겨울잠」)다. 못 척도 못한 가을 중간고사 준비하는 동안 쑥부쟁이 지나갔습니다. 꽃향유도 지나갔습니다. 개여뀌도 지나갔습니다. 문제집 푸느라 바빠 공부방 가느라 바빠 본 척도 못했습니다. 가을이 지나갔습니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지금 우리 아이들은 놀 수 있는 시기가 없다. 사계절 내내 동무들과 뛰어놀기는커녕 학교에 학원에 뺑뺑이를 도느라 놀지 못한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도 모른다. 농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미 그곳도 도시처럼 아이들이 공부에 매달리게 되었다. 시인과 내가 살던 때와 너무 다르다. 그렇지만 우리 동시가 써야 하는 때는 농촌에서 살던 어린 시절이 아니라 지금 여기여야 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노래해야 한다. “얼룩진 내 얼굴 보고 / 얼굴이 그게 뭐니? / 못마땅해하시지만요. // 시험 못 봐 울었어요.” (「엄마가 모르는 일」)라고 쓴 것처럼 지금 여기 우리 아이들을 치열하게 살펴야 한다. 「산 할머니」「벌초하는 날」「내 자식인가 해서」「이상한 전화」처럼 어른들 마음을 잘 드러낸 시도 좋지만 우리 아이들 마음을 다독이는 시가 더 필요하다.
소박하면서도 따듯한 일상과 자연을 넘나들며 아이들의 정서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해 내는 이수경 시인의 세 번째 동시집입니다. 지리산 자락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채로운 속살을 드러내는 자연과 그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박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른 봄부터 겨울까지 시간의 흐름에 맞춰 펼쳐지는 동시들은 시인의 유년 시절에 관한 기억인 동시에 세월이 흘러도 늘 변함없는 자연과 사람들에게 바치는 맑고 아름다운 노래이기도 합니다. 전작 우리 사이는 과 억울하겠다, 멍순이 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심리를 잘 포착한 경쾌한 동시집이었다면, 갑자기 철든 날 은 작가의 웅숭깊은 시선과 좀 더 확장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동시집입니다. 2013년도 대산창작기금 수혜작으로, 모두 마흔여섯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사계절 중학년문고 서른한 번째 책입니다.
시인의 말
1부 철든 봄
술래가 찾은 것│봄은│봄이 간 곳│봄 조각│술렁술렁 우리 마을│터질똥 말똥│산 할머니│그래도 비│우리 마을 사람들
2부 철든 여름
6월│장맛비│쉬는 시간│산이 되는 시간│낮잠│황소 한 마리 먹기│마중│여름밤과 축구를│콩 까기
3부 철든 가을
반딧불이 숨바꼭질│떡비│사과 한 알│새로 바른 한지 방문│본 척도 못한 가을│나락 말리는 날│벌초하는 날│내 자식인가 해서│보름달의 실수
4부 철든 겨울
서리 내린 아침│우리를 일으키는 말│하나도 안 춥다│비밀│다신 안 가고 싶은 집│겨울잠│멍한 할머니│시골 마을 돋을별│응달에 앉은 새싹
5부 철든 우리
서울내기 미주네│서울 가게 되면│엄마가 모르는 일│나만 혼났다│넌 이제 끝장이야!│이상한 전화│그래도│좋아하게 되면│아무도 신경 안 써│무덤에 누워서도